선금 입금 없이 작업 시작한 후 클라이언트가 잠수한 일
- 03 Dec, 2025
선금 없이 시작했다가 돈 못 받은 썰
그때는 몰랐다
3년 전 겨울이었다. 프리랜서 1년차.
클라이언트는 지인 소개였다. 카페 창업 준비 중인 30대 남자. “지인 소개인데 뭐” 하는 마음으로 만났다.
미팅은 좋았다. 브랜딩 전체를 맡기고 싶다고 했다. 로고, 메뉴판, 인테리어 소품까지. 견적은 450만원.
“계약서요? 우리 사이에 그런 거까지 해야 해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소개해준 지인도 “걔 괜찮아. 돈 잘 벌어” 했다.
나는 계약서 없이 작업을 시작했다.

2주 동안 밤샜다
로고 시안 5개 뽑았다. 메뉴판 디자인 3종. 간판 목업까지.
매일 밤 2시까지 작업했다. 다른 프로젝트는 미뤘다. “큰 건 하나만 제대로 하자” 생각이었다.
중간 보고 때마다 클라이언트는 만족했다.
“역시 실력 좋으시네요.” “이 정도면 우리 카페 대박이겠어요.” “수정 사항 없어요. 그대로 진행하세요.”
칭찬에 기분 좋았다. 열심히 했다.
최종 파일 전달일은 12월 20일이었다. 약속대로 모든 파일을 보냈다. AI, JPG, PDF, 목업 이미지까지.
“잘 받았습니다. 완벽해요. 다음 주에 입금할게요.”
그의 마지막 메시지였다.

연락이 끊겼다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입금 없었다.
카톡 보냈다. 읽씹. 전화했다. 받지 않았다. 이메일 보냈다. 답 없었다.
지인한테 물었다. “요즘 바쁜가 봐요. 제가 연락해볼게요.”
일주일 후 지인이 말했다. “카페 오픈 미뤄졌대요. 자금 사정이…”
1월이 됐다. 월세 나갔다. 통장에 80만원.
다른 프로젝트는 미뤄뒀던 상태. 12월 수입이 거의 없었다.
내용증명 보낼까 알아봤다. 변호사 상담 비용만 30만원. 계약서가 없으니 승소 보장도 없다고 했다.
450만원은 그렇게 증발했다.
그 후로 바뀐 것들
1월 2일. 내 원칙을 정했다.
무조건 선금 50%. 계약서 필수. 지인 소개도 예외 없음.
첫 클라이언트는 불편해했다. “저 믿으시면 안 돼요?”
“죄송합니다. 원칙이에요.”
그는 다른 디자이너를 찾았다. 괜찮았다.
두 번째 클라이언트는 흔쾌히 선금 보냈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때 알았다. 제대로 된 클라이언트는 선금 요구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지금의 시스템
지금 내 계약서는 3페이지다.
- 작업 범위 명시
- 수정 횟수 제한 (3회)
- 선금 50%, 중간금 30%, 잔금 20%
- 최종 파일 전달은 잔금 입금 후
- 3개월 후 미입금 시 법적 조치
복잡해 보이지만 클라이언트 반응은 좋다. “프로페셔널하시네요.”
선금 안 보내는 사람은 어차피 나중에도 안 보낸다. 초반에 걸러지는 게 낫다.
450만원이 가르쳐준 것
그 돈 지금도 아깝다. 당시 월세 3개월치였다.
하지만 더 큰 손해를 막아줬다.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돈 못 받은 적 없다.
프리랜서는 호구가 아니다. 전문가다. 내 시간과 노동의 가치를 내가 지켜야 한다.
“사이 나빠지면 어쩌지” 걱정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다. 돈 안 주는 사람과 무슨 사이.
계약서 쓰자고 불편해하는 클라이언트. 그게 레드 플래그다.
지인 소개든 뭐든 계약서는 필수다. 아는 사이일수록 더 확실히 해야 한다.
지금 하는 말
프리랜서 시작한 후배들한테 말한다.
“선금 안 받고 시작하지 마. 절대로.”
“계약서 복잡하면 간단하게라도 써. 카톡에 작업 범위랑 금액이라도 남겨.”
“‘나중에’라는 말 믿지 마. 지금 안 주면 나중에도 안 줘.”
450만원짜리 수업료였다. 비쌌지만 값어치는 했다.
지금은 선금 들어오기 전까지 파일 하나 안 만든다. 미팅만 한다.
차가워 보일 수 있다. 상관없다. 내 통장 잔고가 더 중요하다.
선금은 신뢰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시스템이 나를 지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