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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
- 23 Dec, 2025
야밤 미팅: 새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회의
야밤 미팅: 새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회의 오후 9시 30분, 줌 링크를 받았다 "내일 아침 미팅 어떠세요?" "아 죄송한데 내일은 일정이 빡빡해서요. 오늘 밤 10시 괜찮으세요?" 괜찮을 리 없다. 지금 9시 반이다. 씻으려던 참이었다. 머리는 산발이고 얼굴은 민낯이다. 하지만 대답은 정해져 있다. "네 가능합니다." 프리랜서의 미덕. 유연성. 클라이언트 일정에 맞춘다. 항상. 밤 10시든, 새벽 1시든, 일요일 오전이든. 30분 동안 할 일이 많다. 머리 묶고, 화장 최소한으로 하고, 배경 정리하고, 조명 켜고, 노트북 충전 확인하고, 포트폴리오 파일 열어두고, 견적서 템플릿 준비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낮 시간처럼 보이게 만들기.프리랜서는 밤에도 낮인 척한다 조명이 중요하다. 링라이트 켰다. 얼굴이 밝아진다. 모니터 밝기도 최대로. 화면이 얼굴을 비춘다. 배경에 시계 안 보이게. 창문에 커튼 쳤다. 밖이 어둡다는 걸 들키면 안 된다. "아 아직도 일하세요?" 같은 말 듣기 싫다. 프리랜서는 24시간 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많다. 실제로 그렇긴 하지만, 티 내면 안 된다. "밤늦게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하는 클라이언트는 10% 정도. 나머지 90%는 "제 시간이 이때밖에 없어서요" 한다. 이해한다. 회사 다니면 저녁 시간밖에 없다. 근데 나도 사람이다. 저녁 있다. 하지만 말 못 한다. 프로젝트 따려면 맞춰야 한다. 9시 55분. 줌 링크 눌렀다. 5분 일찍 들어가는 게 프로다. 대기실에서 카메라 확인. 조명 괜찮다.피곤해도 텐션은 올린다 10시 정각. 클라이언트 입장했다. 남자 둘, 여자 한 명. 다들 회사 사무실에 있다. 배경에 화이트보드 보인다. 아직도 회사다. "안녕하세요!" 목소리 톤 올렸다. 밝게. 피곤한 티 내면 안 된다. "네 안녕하세요.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서..."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다. 졸리다. 근데 표정은 웃고 있다. 프로니까. "저희가 새로운 서비스를 런칭하려고 하는데요." "네네." "홈페이지랑 앱 UI 전체를 새로 만들어야 해서요." 귀가 번쩍 띄었다. 큰 프로젝트다. 졸음 사라졌다. 돈 냄새.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요?" "홈페이지 10페이지 정도, 앱은 30개 화면?" 계산 빨리 들어갔다. 홈페이지 페이지당 30만원, 앱 화면당 20만원. 대충 900만원. 협상하면 700 정도 받을 수 있다. 근데 일단 들어야 한다. 급한지.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다음 달 말까지 가능할까요?" 5주. 빡빡하다. 근데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네 가능합니다." 이 말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밤 미팅은 말이 길어진다 낮 미팅은 1시간이다. 정확히. 다들 다음 일정 있으니까. 밤 미팅은 끝이 없다. 시간 제약이 없으니까 이것저것 다 묻는다. "참고할 만한 사이트 있어요?" "디자인 스타일은 어떤 걸 선호하세요?" "이런 기능도 가능해요?" "작업 기간 더 단축 가능해요?" 질문에 다 답했다. 포트폴리오 화면 공유했다. 과거 작업물 보여줬다. 견적서 템플릿 보여줬다. 대략적인 금액 설명했다. 10시에 시작한 미팅. 11시 넘었다. 아직도 끝날 기미 안 보인다. "저희가 내부적으로 검토해보고 연락드릴게요." "네, 편하신 시간에 연락 주세요." 편한 시간. 그게 언제일지 모른다. 내일 낮일 수도, 다음 주 밤일 수도. "그럼 오늘 감사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미팅 종료. 11시 20분. 1시간 20분 동안 집중했다. 피곤하다. 근데 끝난 게 아니다. 지금부터 정리한다. 메모 정리. 오늘 나온 얘기 정리. 견적서 수정. 오늘 논의한 내용 반영. 이메일 작성. 미팅 내용 요약, 견적서 첨부. 12시 넘어서 메일 보냈다. 제목: [견적서] 한프리 디자인 - 서비스 UI/UX 제안 보내고 나니까 허탈하다. 따낼 수 있을까. 경쟁자 있을 텐데. 견적 너무 높게 썼나. 아니면 너무 낮게? 모른다. 기다려야 한다. 프리랜서의 일상. 미팅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밤 미팅의 장단점 솔직히 밤 미팅 싫지만은 않다. 클라이언트가 여유롭다. 낮보다 덜 재촉한다. "빨리 얘기하고 끊어야 해서요" 같은 말 안 한다. 시간 많으니까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클라이언트도 피곤하다. 같이 피곤하면 솔직해진다. "사실 예산이 많지 않아서요." "사실 저희도 처음 해보는 거라..." 이런 얘기 낮에는 안 한다. 밤에 피곤하면 본심 나온다. 단점도 명확하다. 생활 리듬 깨진다. 저녁 7시면 일 끝났다고 생각한다. 근데 10시에 미팅 잡히면 다시 집중 모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미팅 끝나고 잠 안 온다. 머릿속에 오늘 얘기가 맴돈다. "이렇게 말할 걸", "견적 저렇게 쓸 걸". 침대 누워서 핸드폰 본다. 클라이언트가 메일 봤는지 확인한다. 안 봤다. 당연하다. 자고 있겠지. 나도 자야 하는데. 내일 또 일 있는데. 새벽 2시. 겨우 잠든다. 프리랜서의 밤은 길다. 다음 날 오전 11시 핸드폰 알람. 메일 왔다. 클라이언트다. 심장 뛴다. "검토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답장 아니다. 자동 회신이다. 허탈하다. 커피 내렸다. 오늘도 기다린다. 프로젝트 따는 것보다 기다리는 게 더 힘들다. 어제 밤 미팅이 헛수고일 수도 있다. 근데 또 미팅 제안 들어온다. 이번엔 내일 저녁 9시. "네 가능합니다." 또 쓴다. 이 말. 프리랜서는 이렇게 산다.밤 미팅은 이제 익숙하다. 근데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