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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투룸, 반은 작업실 반은 집으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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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투룸, 반은 작업실 반은 집 오늘 택배 기사님이 물었다. "여기 사무실이에요, 집이에요?" 나도 모르겠다. 작년 11월에 이사 왔다. 망원동 투룸. 보증금 3000, 월세 65. 방 하나는 침실, 방 하나는 작업실. 완벽한 계획이었다. 지금은 작업실에서 밥 먹고, 침실에서 노트북 켜고 일한다. 경계가 없다. 아침 9시, 출근은 5초 침대에서 일어나서 작업실 문 열면 출근 끝. 5초 걸린다. 세수도 안 했다. 모니터 켠다. 어제 밤 11시까지 했던 작업 파일이 그대로다. 미완성 PPT 40페이지. 오늘 오후 5시 마감. 커피 내린다. 부엌이랑 작업실 거리 3미터. 왕복 10초. 출퇴근 시간 0분이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확신이 없다. 책상 앞에 앉는다. 잠옷 바지에 후드티. 아무도 안 본다. 화상 회의 있으면 위만 갈아입는다. 첫 작업 시작. 10시 30분. 원래 9시 시작이 목표였다. 매일 밀린다.점심 12시, 냉장고와의 거리 배고프다. 냉장고 연다. 어제 시킨 떡볶이 반 남은 거. 전자레인지 3분. 작업실에서 먹는다. 모니터 보면서. 이메일 확인하면서. 클라이언트 답장 쓰면서. 이게 점심인가. 끼니인가. 그냥 먹이를 섭취한 건가. 회사 다닐 때는 동료들이랑 식당 갔다. 메뉴 고민하고, 줄 서고, 수다 떨고. 1시간. 그때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밥 먹는 시간 10분. 효율적이다. 근데 뭔가 허하다. 냉장고 문 여는 횟수 세어봤다. 하루 평균 17번. 배고파서가 아니다. 그냥 습관이다. 일하다가 막히면 냉장고 연다. 별거 없다. 문 닫는다. 다시 일한다. 작업실이랑 부엌 거리 3미터가 독이다. 너무 가깝다.오후 3시, 침대가 보인다 집중력이 떨어진다. PPT 32페이지까지 했다. 8페이지 남았다. 눈이 아프다. 작업실 문 열려있다. 침실 보인다. 침대 보인다. 이불 보인다. 5분만 누울까. 아니다. 누우면 1시간 간다. 알고 있다. 커피 더 내린다. 오늘 세 번째. 카페인 과다. 손 떨린다. 의자에서 일어난다. 스쿼트 10개. 집에서 일하면 운동 부족이라고 했다. 누가 그랬는지 기억 안 난다. 창문 연다. 망원시장 소리 들린다. 사람들 목소리. 장사하는 소리. 바깥세상이 있다는 증거. 나는 투룸 안에 있다. 7시간째. 다시 앉는다. 마감 2시간 남았다. 저녁 7시, 퇴근이 없다 PPT 넘겼다. 5시 10분에. 10분 늦었지만 클라이언트는 괜찮다고 했다. 이제 퇴근인가. 아니다. 견적서 써야 한다. 새로 들어온 프로젝트. 브랜드 로고 디자인. 답장 안 하면 다른 디자이너한테 간다. 저녁 먹는다. 배달 음식. 짜장면. 또 모니터 보면서 먹는다. 드라마 틀어놨다. 넷플릭스. 밥 먹는 시간이라도 콘텐츠를 소비해야 할 것 같다. 9시. 견적서 완성. 보낸다. "검토 후 답변 드리겠습니다." 언제 오려나. 모니터 끈다. 이제 퇴근인가. 침실 간다. 침대에 눕는다. 핸드폰 본다. 인스타그램. 업계 소식. 새 프로젝트 공모. 저장한다. 나중에 지원해야지. 11시. 아직도 일 생각한다. 퇴근이 뭐지.경계가 사라지는 시간들 투룸에 산 지 6개월. 발견한 것들. 출근길이 없으면 마음의 준비가 없다. 회사 다닐 때는 지하철 30분이 워밍업 시간이었다. 음악 듣고, 업무 정리하고, 마음 다잡았다. 지금은 침대에서 책상까지 10초. 정신이 따라오지 못한다. 퇴근길이 없으면 일이 끝나지 않는다. 회사 나오면 물리적으로 일과 멀어진다. 집에 오면 쉬는 시간. 지금은 작업실 나오면 침실이다. 침실 나오면 작업실이다. 도망칠 곳이 없다. 점심시간이 없으면 밥이 아니라 연료다. 동료가 없으면 대화가 없다. 하루 말한 단어 수를 세어봤다. 27개. 택배 기사님한테 "감사합니다" 두 번. 혼잣말 스물다섯 번. 나만의 룰 만들기 망하기 전에 규칙을 만들었다.오전 9시 30분까지 씻고 옷 갈아입기. 잠옷으로 일하지 않기. 누가 보든 안 보든.점심은 작업실 밖에서. 거실 식탁이라도. 모니터 끄고 먹기.저녁 8시 이후 견적서 안 쓰기. 급한 거 아니면 내일.주 2회 카페 나가기. 코워킹 스페이스 월 10만원. 아깝지만 정신 건강비.침실에 노트북 안 가져가기. 침대는 일하는 곳이 아니다.지켜지는가. 50% 정도. 그래도 안 만들면 0%다. 투룸의 장점을 찾아보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솔직히. 출퇴근 시간 0분. 연 500시간 절약. 교통비 0원. 연 150만원 절약. 눈치 안 본다. 집중 잘될 때 12시간 연속 작업 가능. 회사였으면 불가능. 점심 메뉴 고민 안 한다. 냉장고에 있는 거 먹으면 된다. 시간 절약. 옷 신경 안 쓴다. 편한 옷. 화상 회의 없는 날은 하루 종일 후드티. 고양이 키운다. 회사 다니면 못 키웠다. 낮에 혼자 있으면 불안해한다. 지금은 작업실 책상 아래서 잔다. 가끔 무릎에 올라온다. 위로가 된다. 자유롭다. 이게 제일 크다. 내가 시간을 컨트롤한다. 물론 클라이언트 마감이 있지만. 그래도 출근 도장은 안 찍는다. 균형 찾기는 진행형 6개월 살아봤다. 답은 없다. 어떤 날은 완벽하다. 9시 기상, 10시 작업 시작, 점심 식탁에서, 저녁 7시 퇴근, 넷플릭스. 규칙 지킨다. 뿌듯하다. 어떤 날은 망한다. 11시 기상, 침대에서 노트북, 냉장고 20번, 밤 10시까지 일, 침대에서 핸드폰. 다음 날 후회. 패턴이 없다. 프로젝트 일정에 따라 다르다. 마감 일주일 전에는 규칙 따위 없다. 살아남기 바쁘다. 그래도 계속 시도한다. 매일 아침 다짐한다. 오늘은 경계를 지키겠다고. 50% 지켜진다. 50%는 실패다. 그래도 0%보단 낫다. 투룸에서 일하고 사는 것. 자유와 불안의 공존. 효율과 고립의 교환. 선택의 결과. 망원동 투룸이 준 것들 좋은 것: 시간, 돈, 자유, 고양이, 통근 스트레스 제로. 나쁜 것: 경계 붕괴, 고립감, 운동 부족, 냉장고 중독, 대화 결핍. 후회하는가. 아니다. 다시 회사 갈 건가. 모르겠다. 지금은 이렇게 산다. 투룸에서. 반은 일하고 반은 살고. 경계는 흐리고 균형은 찾는 중. 내일도 5초 출근한다. 잠옷 벗고 일한다. 냉장고 15번쯤 열 것이다. 저녁 8시에 퇴근 시도한다. 실패할 수도 있다. 그래도 계속한다. 이게 내가 선택한 삶이니까.오늘도 작업실 문 안 닫았다. 침대가 보인다. 내일은 닫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