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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일 없는 날: 넷플릭스를 봐도 죄책감이 드는 이유

프리랜서의 일 없는 날: 넷플릭스를 봐도 죄책감이 드는 이유

프리랜서의 일 없는 날: 넷플릭스를 봐도 죄책감이 드는 이유 오전 11시, 할 일이 없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떴다. 9시였다. 메일함을 열었다. 새 프로젝트 문의 0건. 클라이언트 피드백 0건. 수정 요청 0건. 통장을 확인했다. 지난주 입금된 프로젝트 금액이 전부다. 다음 입금 예정은 2주 후. 할 일이 없다. 보통 사람들은 이럴 때 좋아한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프리랜서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오예, 오늘 쉬는 날이네!" 했다. 지금은 다르다. 가슴이 답답하다.넷플릭스를 켰다, 그리고 꺼버렸다 소파에 앉았다. 노트북을 열었다. 넷플릭스. "볼까?" 아까부터 보고 싶었던 드라마가 있다. 지난주 친구가 추천했다. "너 취향 저격일 거야." 재생 버튼을 눌렀다. 오프닝이 나온다. 5분 지났다. 집중이 안 된다. 화면을 보는데 머릿속은 딴 데 있다. '이거 보고 있을 시간에 포트폴리오 정리할 걸.' '아니면 새로운 디자인 툴 공부라도.' '아 맞다, 세금 신고 자료 정리 안 했지.' 드라마를 껐다. 15분도 안 봤다. 노트북을 닫았다. 다시 폈다. 유튜브를 켰다. "프리랜서 영업 노하우" 검색. 영상을 틀었다. 30분짜리 강의. 진지하게 봤다. 메모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것도 일 아닌가. 쉬는 건데 왜 이러고 있지.쉬면 뒤처진다는 착각 프리랜서 4년 차다. 이 불안은 언제부터였을까. 회사 다닐 때는 안 그랬다. 퇴근하면 진짜 끝이었다. 주말엔 폰도 안 봤다. "회사 일 생각하면 지는 거다" 이게 원칙이었다. 그런데 프리랜서는 다르다. 일이 있을 땐 "왜 이렇게 많지" 하면서 투덜댄다. 밤 11시까지 작업한다. 주말도 없다. 일이 없을 땐 "다음 달 뭐 먹고 살지" 걱정한다. 쉬는데도 불안하다. 어제 프리랜서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요즘 일 없는 사람?"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댓글이 30개 넘게 달렸다. 다들 불안하다고 했다. 쉬는 게 죄 짓는 기분이라고. 한 사람이 썼다. "쉬면 다른 디자이너한테 밀리는 것 같아요. 그 사이 다들 성장하고 있을 것 같고."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친구들 인스타그램을 봤다. 프리랜서 친구들. 다들 뭔가 하고 있다. 전시 갔다, 세미나 들었다, 새로운 작업 시작했다. 나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올렸다. 책상 사진. "오늘도 작업 중"이라고. 거짓말이다. 사진만 찍고 아무것도 안 했다.진짜 휴식이 뭔지 모르겠다 회사 다니는 친구를 만났다. 지난주 금요일. "너 요즘 어때? 일은?" "음, 괜찮아. 바빠." 거짓말이다. 한가하다. 친구가 말했다. "부럽다 프리랜서.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잖아." 웃었다. "그러게." 집에 왔다. 침대에 누웠다.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고? 쉴 수가 없다. 쉬는 게 무섭다. 일 없는 날이 3일 지나면 통장 잔고만 확인한다. 5일 지나면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한다. 일주일 지나면 '내 실력이 부족한가' 의심한다. 그래서 쉬는 날도 뭔가 한다. 온라인 강의 듣는다. 디자인 트렌드 리서치한다. 포트폴리오 다듬는다. 이게 휴식인가. 아니다. 그럼 뭐가 휴식인가. 모르겠다. 수입이 불규칙하면 마음도 불규칙하다 지난달 수입은 450만원이었다. 프로젝트 3개. 이번 달은 아직 200만원. 프로젝트 1개. 다음 달은 모른다. 확정된 게 없다. 이게 제일 힘들다. 예측이 안 된다. 회사원은 매달 정해진 날 통장에 돈이 들어온다. 월급날이 있다. 프리랜서는 없다. 클라이언트가 입금할 때 들어온다. 늦으면 2주, 한 달도 밀린다. 그래서 돈이 들어온 날엔 기분이 좋다. "이 정도면 괜찮네." 일주일 지나면 불안하다. "다음 거는 언제 들어오지." 2주 지나면 초조하다. "새 프로젝트 안 들어오면 어떡하지." 한 달 지나면 공황이다. "통장 바닥났다. 카드값 나가면..." 그래서 쉬는 날에도 쉴 수가 없다. 쉬는 게 돈 버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다. 예전에 읽은 기사가 생각난다. "프리랜서는 휴가비가 없다. 쉬는 날은 무급이다." 맞는 말이다. 쉬면 돈이 안 들어온다. 일해야 돈이 들어온다. 그래서 아프면 그냥 버틴다. 병원 가면 그날 일 못 한다. 돈이 아깝다. 몸이 이상해도 "괜찮아, 이 정도는" 한다. 그러다 진짜 아파진다. 불안의 정체는 무엇인가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생각해봤다. 첫 번째, 다음 달이 불확실하다. 지금 일이 없으면 다음 달도 없을 것 같다. 근거 없는 불안이다. 실제로는 계속 일이 들어왔다. 4년 동안 굶은 적 없다. 그런데도 불안하다. 두 번째, 비교한다. 남들은 다 잘하는 것 같다. SNS를 보면 다들 바쁘다. 프로젝트 많다. 나만 한가한 것 같다. 착각이다. 다들 바쁜 척한다. 나도 그렇게 한다. 세 번째, 쉬는 걸 배운 적이 없다. 학교 다닐 때부터 계속 뭔가 했다. 스펙 쌓고, 포트폴리오 만들고, 취업하고, 일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이 없었다. 그래서 쉬는 게 낯설다. 불안하다. 네 번째, 주변의 시선. 부모님은 프리랜서를 인정 안 한다. "그냥 회사 다녀라." 친구들은 "자유롭겠다" 한다. 자유로운 건 맞다. 그런데 불안정하다. 이걸 설명하기 어렵다. 다섯 번째, 책임감.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한다. 회사는 내가 쉬어도 돌아간다. 프리랜서는 내가 멈추면 멈춘다. 내 인생이 내 책임이다. 무겁다. 넷플릭스를 다시 켰다 오후 3시. 다시 소파에 앉았다. 노트북을 열었다. 넷플릭스. 아까 그 드라마. 계속 볼까. 재생 버튼을 눌렀다. 5분 지났다. 또 집중이 안 된다. '아, 진짜.' 그냥 봤다. 억지로. "쉬는 거다, 오늘은. 뭐라든." 30분 지났다. 내용이 재밌다. 친구 말이 맞았다. 내 취향이다. 1시간 지났다. 몰입했다. 불안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2시간 지났다. 에피소드 3개 봤다. 배가 고프다. 주방에 가서 라면을 끓였다. 먹으면서 4번째 에피소드를 틀었다. 핸드폰을 봤다. 메일이 왔다. "안녕하세요, 디자인 의뢰 건으로 연락드립니다." 심장이 뛴다. 메일을 열었다. 읽었다. 브랜딩 작업. 예산 괜찮다. 일정도 여유 있다. "네, 가능합니다. 미팅 일정 조율하실까요?" 답장을 보냈다. 다시 드라마를 봤다. 불안이 좀 줄었다. 일이 들어왔으니까. 그런데 이상하다. 일 없을 때 불안하고, 일 있을 때 안심하고. 이게 맞나. 죄책감은 어디서 오는가 저녁 7시. 드라마를 다 봤다. 시즌 1 완주. 10시간. 보통 때 같으면 "시간 낭비했다" 생각했을 거다. 오늘은 좀 다르다. 재밌었다. 진짜 쉬었다. 아무 생각 안 하고 봤다. 죄책감은 있었다. 중간중간 '이거 보고 있을 때냐' 싶었다. 그런데 참았다. 끝까지 봤다. 이게 맞는 것 같다. 일이 없다고 매일 공부할 필요 없다. 매일 포트폴리오 다듬을 필요 없다. 그냥 쉬어도 된다. 드라마 봐도 된다. 넷플릭스 정주행해도 된다. 내일 일할 에너지를 충전하는 거다. 진짜 휴식이다. 그런데 이걸 받아들이기 어렵다. 4년째 그렇다. "쉬면 뒤처진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있다. 누가 심은 걸까. 사회? 자본주의? SNS? 아니면 나? 모르겠다. 프리랜서의 역설 프리랜서가 자유롭다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시간은 자유롭다. 출근 안 해도 된다. 야근 강요 없다. 주말에 일 안 해도 된다. 그런데 마음은 자유롭지 않다. 항상 일 생각한다. 쉬어도 불안하다. 다음 달 걱정한다. 회사원은 반대다. 시간은 자유롭지 않다. 9시 출근, 6시 퇴근. 야근, 주말 근무. 그런데 마음은 좀 더 자유롭다. 퇴근하면 끝이다. 월급날은 정해져 있다. 뭐가 더 나은가. 모르겠다.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프리랜서가 맞는 것 같다. 회사는 못 다니겠다. 그런데 이 불안은 어떻게 해야 하나. 4년째 고민이다. 오늘의 결론 오늘 하루는 괜찮았다. 일 없는 날이었다. 넷플릭스 봤다. 10시간. 죄책감 있었다. 그런데 견뎠다. 저녁에 메일 왔다. 새 프로젝트. 운이 좋았다. 다음엔 또 어떨지 모른다. 일주일 동안 연락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어떻게든 된다. 프리랜서 5년 차가 되면 좀 나을까. 10년 차 선배한테 물어봤다. 예전에. "언제쯤 불안 안 해요?" "글쎄, 나도 아직 불안해." 웃었다. 10년 차도 불안하다니. 그럼 이건 고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건가. 프리랜서의숙명. 일 없는 날의 불안. 쉬는 날의 죄책감. 이게 프리랜서 인생이다. 그래도 계속한다. 회사는 못 다니겠으니까.내일은 또 메일함 확인부터 시작이다. 새 프로젝트 미팅 준비해야지. 그리고... 드라마 시즌 2도 나왔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