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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 프로젝트, 한 번 하고 싶었던 이유

브랜딩 프로젝트, 한 번 하고 싶었던 이유

UI만 하다가 브랜딩 한다고? UI 4년 하고 프리랜서 3년 반 했다. 그동안 받은 프로젝트 대부분이 웹이나 앱 화면 디자인이었다. 버튼 위치, 색상 조합, 사용자 흐름. 익숙했다. 편했다. 그런데 작년 11월, 클라이언트한테 연락 왔다. "브랜딩도 할 수 있나요?" 심장이 쿵했다. 하고 싶었던 거였다. 브랜딩. 회사 다닐 때 브랜딩팀 부러웠다. 로고 만들고, 컬러 시스템 짜고, 전체 세계관 구축하는 거. UI는 정해진 틀 안에서 작업하는데, 브랜딩은 틀 자체를 만드는 거였으니까. "할 수 있습니다." 답장 보냈다. 사실 자신은 없었다. 브랜딩 해본 적 없으니까. 근데 안 해보면 평생 모른다. 프리랜서 됐을 때도 그렇게 시작했다.견적서 쓰면서 검색했다 브랜딩 견적 어떻게 쓰는지 몰랐다. UI는 화면 개수로 계산하는데, 브랜딩은? 로고 하나에 얼마? 브랜드 가이드는? 프리랜서 단톡방에 물어봤다. "브랜딩 처음 해보는데 견적 어떻게 쓰나요?" 답장 몇 개 왔다. "로고 기본 300부터", "BI 전체면 1000 이상", "클라이언트 규모 봐야지." 검색 시작했다. 브랜딩 견적서 양식, 브랜드 아이덴티티 구성 요소, 납품 파일 종류. 노션에 정리했다. 3시간 걸렸다. 클라이언트는 신생 화장품 브랜드였다. 온라인몰 준비 중이고, 브랜드 이름은 정해졌는데 나머지가 없다고 했다. 로고, 컬러, 패키지 디자인, 인스타 템플릿까지. 범위가 넓었다. UI만 하던 나한테는 큰 프로젝트였다. 견적 800만원으로 보냈다. 시장가보다 낮췄다. 처음이니까. 포트폴리오 만들 거니까. 일주일 뒤 연락 왔다. "진행하겠습니다." 통장에 선금 400만원 들어왔다. 기뻤다. 그리고 무서웠다.시작은 무조건 리서치 첫 미팅 날, 클라이언트한테 질문 30개 준비했다. 브랜드 핵심 가치가 뭔지, 타겟이 누군지, 경쟁 브랜드는 어딘지. UI 작업할 때도 질문하지만, 브랜딩은 차원이 달랐다. "이 브랜드가 사람이라면 어떤 성격인가요?" 물어봤다. 클라이언트가 잠깐 멈칫했다. "친근하고... 전문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애매했다. 당연했다. 아직 정리 안 된 브랜드니까. 미팅 2시간 했다. 녹음하고, 노트 5페이지 채웠다. 집 와서 키워드 정리했다. "자연주의, 30대 여성, 피부 고민, 부담 없는 가격, 지속 가능성." 경쟁사 분석 시작했다. 비슷한 콘셉트 브랜드 20개 찾아서 로고, 컬러, 패키지 비교했다. 녹색 쓰는 브랜드 많았다. 자연주의니까. 근데 다 비슷해 보였다. "차별점이 뭐지?" 혼잣말했다. 고민 3일 했다. 답은 클라이언트가 했던 말에 있었다. "화학적이지 않지만, 촌스럽지 않게." 자연스러운데 세련된 느낌. 거기서 출발했다. 무드보드 만들었다. 핀터레스트에서 이미지 300장 모았다. 자연, 텍스처, 타이포, 컬러 조합. 밤 2시까지 작업했다. 고양이가 키보드 위에 앉았다. "나도 자고 싶어." 한 시간만 더. 로고는 50번 그렸다 로고 스케치 시작했다. 종이에 손으로 그렸다. 브랜드 이름 첫 글자 활용한 거, 식물 모티프, 미니멀한 도형. 30개 그렸다. 마음에 안 들었다. 다음 날 20개 더 그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난 아이디어 있었다. 잎사귀인데, 동시에 사람 얼굴 실루엣. "이거다." 직감 왔다. 일러스트레이터 켰다. 벡터 작업 시작했다. 곡선 각도 0.1mm 단위로 조정했다. 완벽하게 대칭 맞췄다. 6시간 걸렸다. 컬러 테스트했다. 녹색 20가지 버전 만들었다. 너무 진하면 무겁고, 너무 연하면 싸 보였다. 중간 톤에서 찾았다. "#7BA882" 이 컬러였다. 모니터에서 보고, 프린트해서 보고, 폰으로 봤다. 다 괜찮았다. 클라이언트한테 시안 3개 보냈다. 제일 자신 있는 거, 안전한 거, 실험적인 거. "첫 번째요." 답 빨랐다. 내가 밀었던 거였다. 기분 좋았다. 수정 요청 왔다. "로고 옆에 브랜드명 붙일 때 간격 좀 더 좁게." "영문 버전도 필요해요." "명함에 들어갈 크기로도 보고 싶어요." 수정 7번 했다. 짜증 안 났다. 브랜딩이라서 그런가. 하나하나 완성해가는 느낌이 좋았다.컬러 시스템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로고 끝나고 컬러 시스템 작업 들어갔다. 메인 컬러는 정했으니까 서브 컬러 정하면 되겠지. 쉽게 생각했다. 틀렸다. 메인 하나로는 안 됐다. 패키지 배경, 포인트 컬러, 텍스트 컬러, 강조 컬러. 최소 5개는 있어야 했다. 컬러 조합 테스트 시작했다. 메인 녹색에 베이지 더했다. 자연스러웠다. 포인트로 코랄 핑크 넣었다. 여성스러웠다. 텍스트는 진한 차콜 그레이. 가독성 좋았다. 근데 다 합쳐놓으니까 뭔가 산만했다. 비율 조정했다. 메인 60%, 서브 30%, 포인트 10%. 이 비율로 목업 만들어봤다. 괜찮았다. 접근성도 체크했다. 명도 대비, 색약 모드. UI 하면서 배운 거 여기서도 썼다. 브랜딩이라고 예쁘기만 하면 안 됐다. 실제로 쓸 수 있어야 했다. 가이드 문서 만들었다. 컬러 코드, RGB, CMYK, Pantone. 사용 예시, 금지 사항. A4 15장짜리 PDF. 회사 다닐 때 본 브랜드 가이드 참고했다. 그때는 이해 안 갔는데, 지금은 왜 필요한지 알았다. 패키지는 입체였다 패키지 디자인 시작했다. 화면 안에서만 작업하던 내가 박스를 디자인한다고? 새로웠다. 박스 전개도 찾는 것부터 시작했다. 클라이언트한테 받은 사이즈 있었다. 10cm x 10cm x 3cm. 일러스트레이터에서 전개도 그렸다. 접히는 부분, 풀칠하는 부분, 여백. 로고 배치했다. 정면, 옆면, 윗면. 어디에 뭘 넣을지 고민했다. 제품명은 정면, 성분 표시는 뒷면, QR코드는 옆면. 정보 위계 정리했다. UI 하던 방식 그대로 적용했다. 목업 작업했다. 포토샵에서 스마트 오브젝트로 실물처럼 만들었다. 손에 들고 있는 모습, 여러 개 쌓아놓은 모습. 클라이언트한테 보냈다. "실물로 보고 싶어요." 당연한 요청이었다. 인쇄소 연락했다. 샘플 10개, 35만원. 비쌌다. 견적에 없던 비용이었다. 고민했다. 그냥 내 돈으로 뽑았다. 제대로 하고 싶었다. 일주일 뒤 샘플 왔다. 박스 뜯었다. 모니터에서 보던 거랑 달랐다. 실물이 더 예뻤다. 만졌다. 종이 질감, 코팅 느낌. 내가 디자인한 게 물건이 됐다. 신기했다. 클라이언트 미팅 때 가져갔다. "와, 이거 진짜 상품 같아요." 웃었다. "상품이에요." 그날 수정 사항 거의 없었다. 실물 보니까 확신 생겼나 보다. 인스타 템플릿까지 마지막 작업. 인스타 피드 템플릿. 브랜드 계정 운영할 거니까 일관성 있는 템플릿 필요하다고 했다. 피드 9개 기준으로 짰다. 3x3 그리드. 제품 사진, 텍스트 카드, 라이프스타일 이미지. 3개 패턴 반복하면 깔끔했다. 템플릿 5종 만들었다. 신제품 소개용, 이벤트용, 정보 전달용, 후기 공유용, 브랜드 스토리용. 각각 포토샵 파일로 줬다. 클라이언트가 텍스트랑 이미지만 바꿔 쓸 수 있게. 폰트도 정리했다. 브랜드 전용 폰트 사면 좋은데 예산 없어서 무료 폰트 조합했다. 제목용, 본문용, 강조용. 라이선스 확인하고, 다운로드 링크 정리해서 전달했다. SNS 가이드 문서도 만들었다. 톤앤매너, 해시태그 전략, 업로드 시간대. UI 디자이너가 이런 것까지? 근데 브랜딩은 이런 것까지였다. 전체를 다 봐야 했다. 납품 날 3개월 걸렸다. 계약서에는 2개월이었는데 한 달 늦었다. 중간에 방향 바꾼 것도 있고, 내가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한 것도 있었다. 최종 파일 정리했다. 로고 원본(AI, EPS, PNG, SVG), 컬러 가이드 PDF, 패키지 전개도, 인스타 템플릿, 폰트 파일. 구글 드라이브에 업로드하고 링크 보냈다. 잔금 400만원 들어왔다. 통장 확인했다. 3개월 동안 다른 작업 거의 못 했으니까 이 돈이 전부였다. 시급 계산하면 회사 다닐 때보다 낮았다. 근데 후회 안 했다. 클라이언트한테 전화 왔다.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브랜드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런칭하면 연락 주세요." "네, 제품 보내드릴게요." 전화 끊었다. 고양이 쓰다듬었다. "나 브랜딩 했다." 혼잣말했다. 뿌듯했다. 달라진 거 그 후로 브랜딩 문의 더 들어왔다. 포트폴리오에 올렸더니 반응 좋았다. "UI만 하시는 줄 알았어요." 지금 두 번째 브랜딩 프로젝트 하는 중이다. 이번엔 견적 1200만원 받았다. 경험 생겼으니까. 자신감도 붙었으니까. UI 작업도 달라졌다. 브랜딩 관점으로 보게 됐다. 버튼 하나 디자인해도 '이 브랜드답게' 생각한다. 전체를 보게 됐다. 어려웠다. 밤샘 많이 했다.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근데 그래서 재밌었다. 성장하는 느낌 있었다. UI만 계속 했으면 못 느꼈을 거다. 프리랜서 장점이 이거다. 하고 싶은 거 도전할 수 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실패해도 내 책임이고, 성공해도 내 거다. 다음엔 뭘 해볼까. 모션 그래픽? 3D? 아직 모른다. 근데 또 하고 싶은 거 생기면 할 거다. 견적서 쓰면서 검색하면서 배우면서. 그렇게 프리랜서 산다.브랜딩 한 번 해보길 잘했다. UI만 하는 디자이너에서 브랜드 만드는 디자이너 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