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적 깎아달라는 클라이언트, 어떻게 대처할까?
- 02 Dec, 2025
견적 깎아달라는 클라이언트, 내 정가는 내가 지킨다
견적서를 보냈다. 정성들여 계산했다. 작업 시간, 내 스킬, 수정 횟수, 마감일까지 다 고려했다. 그럼 뭔가 들어온다. 카톡이다.
“견적 좀 깎아줄 수 없을까요? 예산이 생각보다 적어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그 순간. 아, 이거 정말 싫다. 이 감정 알아? 일하고 있던 집중력도 깨지고, 자존감도 흔들린다. 내 일을 평가 절하받는 기분. 그런데 이걸 매번 당하면서 느꼈다. 이건 협상이 아니라 심리전이라는 거. 내가 먼저 무너지는 쪽이 진다. 그래서 정했다. 견적 깎기 요청이 들어오면 나는 전문가처럼 대응한다.

첫 견적에서 이미 결정된다
문제는 처음 견적에서 생긴다. 너무 낮게 책정하면 이런 요청이 자주 들어온다. “어차피 이 정도면 깎아줄 거겠지” 이런 마음이 생기는 거다.
나는 한 번 당했다. 2년 차 프리랜서일 때, 과자 회사 UI 리디자인 프로젝트. 너무 들뜨는 마음에 300만원에 내 견적을 책정했다. 소개받은 클라이언트라 ‘좋은 관계 만들고 싶다’는 심리. 근데 받은 요청은 “250만원으로 할 수 있나요?”였다. 그 순간 내가 한 말은 “네, 괜찮습니다”였다. 그 일이 끝나고 깨달았다. 나는 정말 멍청했다. 앞으로 절대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그래서 이제는 다르다. 견적을 낼 때부터 버팀목을 세운다.
일단 내가 충분히 조사한다. 클라이언트 규모, 프로젝트 복잡도, 수정 횟수를 어떻게 제한할 건지. 그리고 내가 넉넉하게 생각하는 최저 가격을 정한다. 그 이하로는 안 내려간다. 이게 첫 번째 방어선이다. 낮은 견적 = 깎아달라는 요청 = 내 멘탈 파괴. 이 방정식을 깨뜨려야 한다.
견적 깎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을 때
자, 그럼 어떻게 거절할까. 여기가 핵심이다.
1단계: 감정을 숨기고 전문가처럼
내가 제일 먼저 하는 건 깊게 숨을 쉬는 거다. 그리고 ‘이건 당연한 요청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클라이언트는 자기 예산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거다. 나를 무시하려는 게 아니다. 일단 이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그래야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그 다음에 내가 하는 말은 이거다:
“안녕하세요! 견적에 대해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시한 금액은 프로젝트 일정, 수정 횟수, 그리고 최종 결과물 품질을 고려해서 책정한 가격입니다.
혹시 프로젝트 범위를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신지 함께 살펴볼 수 있을까요?”
이 답변의 포인트:
- 거절이 아니라 ‘함께 살펴보자’는 자세
- 내 견적이 임의가 아니라 근거 있다는 표현
- 상대방에게 선택지 제공 (범위 축소)
이렇게 답변하면 대부분 둘 중 하나가 된다. 첫째, 조용해진다. 둘째,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줄일 수 있나요?”라고 물어온다. 둘 다 좋다.

2단계: 범위 축소로 흥정하기
“예산을 맞출 수 없다면 프로젝트를 줄여보자”는 제안이 제일 깔끔하다.
예를 들면:
- 초안 5개 → 3개로 줄이기
- 수정 횟수 무제한 → 5회차로 제한
- 모바일 + 태블릿 + 데스크톱 → 모바일, 데스크톱만
- PPT 추가 작업 제거
구체적으로 “이 부분을 빼면 XX만원이 됩니다” 이렇게 제시한다. 그럼 클라이언트가 판단할 수 있다. 돈을 더 낼 건지, 범위를 줄일 건지.
내가 겪은 실제 사례가 있다. 스타트업 애플 앱 디자인 견적이 450만원이었는데, 클라이언트가 350만원을 요청했다. 나는 이렇게 했다:
“모바일 앱 전체 플로우는 유지하되, 애니메이션 상세 가이드를 기본 레벨로 축소하고, 수정은 최대 3회차로 진행하면 350만원이 맞습니다. 가능하신가요?”
클라이언트는 생각해봤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가이드는 유지하고 싶은데, 수정을 2회차로 하면 어떨까요?”라고 역제안했다. 결국 400만원에서 타협했다. 둘 다 만족하는 결과였다.
3단계: 감정적 거절의 위험성
너무 자주 당하다 보면 화난다. 진짜 화난다. 그 감정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견적은 이미 충분히 낮은 가격입니다.” “전문 디자이너와 저가 디자이너는 다릅니다.” “이 정도면 다른 곳에서는 더 비쌉니다.”
안 된다. 절대 금지다. 이렇게 하면 클라이언트는 즉시 떠난다. 그리고 SNS에 “이 디자이너 쌌어요” 같은 평가를 남긴다. 프리랜서는 평판이 전부인데.
내가 한 번 실수했다. 영어 강사 누군가 내게 “배너 5장 50만원에 할 수 없나”라고 물었다. 내 견적은 120만원이었다. 나는 짜증이 났다. 왜냐하면 그게 얼마나 무례한 깎기인지 아니까. 그래서 답변했다:
“50만원이면 다른 분께 문의해보세요.”
너무 차갑게. 그 사람은 기분 상했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속한 커뮤니티에 “이 디자이너는 너무 불친절해요”라고 써뒀었다. 아, 정말 자존심 때문에 얻은 좋은 게 뭐가 있나.
정가를 지키는 것과 관계를 지키는 것
여기서 헷갈리면 안 된다. “전문가답게 대응한다”는 게 “무조건 거절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견적을 깎아주기도 한다. 다만 조건이 있다:
첫째, 첫 거래일 때
새로운 클라이언트는 투자다. 이 사람이 나중에 큰 프로젝트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럼 처음 프로젝트에서 10~15% 정도는 깎아줄 수 있다. 대신 명확하게 말한다:
“첫 협업이라 이번엔 400만원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다음 프로젝트부터는 정상 가격입니다.”
둘째, 내가 실수했을 때
견적을 낮게 잘못 계산했으면… 그건 내 책임이다. 수정한다. 다만 이건 정말 드물다. 보통 한 세 번은 계산기로 확인한다.
셋째, 장기 프로젝트나 반복 거래일 때
한 달에 3~4개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받는 클라이언트면 약 10% 할인 가능하다. 대신 이건 계약서에 명시한다:
“월 3건 이상의 지속적인 협업을 조건으로 단가 할인이 적용됩니다.”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것
4년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느낀 거, 견적 깎기 요청은 둘 중 하나다.
첫째, 나의 첫 견적이 잘못됐다. 둘째, 상대방이 나를 테스트하고 있다.
대부분은 첫째다. 내가 너무 낮게 쳤거나, 클라이언트의 예산을 미리 파악하지 못했거나. 그래서 이제는 프로젝트 수주 전에 꼭 묻는다:
“혹시 이 프로젝트를 위해 예정하신 예산이 있으신가요?”
이 질문 하나면 70%의 협상 싸움을 미리 피할 수 있다. 클라이언트가 “200만원까지만 가능해요”라고 하면, 나는 처음부터 그 범위 내에서 견적을 낸다. 그리고 그 이상 깎기 요청은 안 들어온다.
나머지 30%는 어떻게 되나? 글쎄, 그런 클라이언트들 대부분은 어차피 나중에 문제가 된다. 계약 후에도 자꾸 요청을 추가하고, 수정을 반복한다. 돈도 늦게 들어온다. 그런 사람들과는 처음부터 맞지 않는 거다.
요즘은 견적 깎기 요청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다 겪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담담하게 대응한다. 감정 섞지 않고, 논리적으로, 프로답게.
진짜 힘든 건 견적 깎기가 아니라 자존감을 지키면서도 관계를 유지하는 거다. 나는 아직도 그걸 배우고 있다. 아마 계속 배울 거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예산이 부족한 클라이언트를 거절하는 게 아니라, 나의 업무 범위를 초과하는 일을 거절하는 거다. 이 차이를 아는 게 전문가와 나머지를 구분 짓는다.
결국 내 견적은 내가 지킨다. 그게 자존심이자 프로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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