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9 Dec, 2025
웹/앱 디자인 견적, 어떻게 책정해야 할까?
웹/앱 디자인 견적, 어떻게 책정해야 할까? 견적서 쓸 때마다 멘붕 프리랜서 4년 했다. 근데 아직도 견적서 쓸 때마다 손이 떨린다. 너무 높게 부르면 날아가고, 낮게 부르면 내가 손해다. 이 줄타기를 100번은 한 것 같은데 아직도 어렵다. 어제도 클라이언트한테 물어봤다. "예산이 어떻게 되세요?" 그랬더니 "디자이너님이 전문가시니까 먼저 말씀해주세요." 이런다. 아 진짜. 처음엔 회사 다닐 때 내 연봉 시급으로 나눠서 계산했다. 연봉 4천만원이면 시급 2만원쯤? 그래서 80시간 걸린다고 치면 160만원. 이렇게 불렀다가 광탈했다. 지금은 좀 다르게 한다. 그 방법을 정리해본다.시간당 vs 프로젝트당, 뭐가 나을까 시간당 계산은 위험하다. 실제로 해봐서 안다. 처음에 "시간당 5만원입니다" 이렇게 제시했다. 클라이언트가 좋아했다. 명확하니까.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이다. 작업이 20시간 걸릴 거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35시간 걸렸다. 수정이 7번 들어왔다. "이거 조금만 바꿔주세요"가 세 번. "역시 처음 게 낫네요"가 두 번. 그러면 어떻게 되냐. 75만원 더 청구해야 한다. 근데 클라이언트는 "처음에 100만원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한다. 시간 증명도 애매하다. 스크린샷 찍어서 보내? 작업 시간 타임랩스? 이상하다. 그래서 지금은 프로젝트 단위로 받는다. "앱 디자인 전체 200만원입니다. 수정 3회까지 포함입니다." 이렇게. 명확하다. 클라이언트도 편하고 나도 편하다. 수정 4번째부터는 회당 20만원 추가예요, 미리 말해둔다. 단점도 있다. 생각보다 금방 끝나면 시급이 높아진다. 근데 그건 내 실력이니까. 빨리 끝내는 것도 능력이다.내 견적 공식 (4년간 수정한 버전) 구체적으로 쓴다. 이게 내 방식이다. 1. 최저선부터 정한다 한 달에 최소 200만원은 벌어야 한다. 세금 떼고, 4대보험 없으니까 따로 저축하고, 월세 내고 나면 그 정도는 있어야 한다. 한 달에 프로젝트 2~3개 한다. 그러면 프로젝트당 최소 70만원은 받아야 한다. 이게 바닥이다. 이것보다 낮으면 안 받는다. 아무리 급해도. 작년에 50만원짜리 받았다가 진짜 후회했다. 시간 대비 최저시급도 안 나왔다. 2. 작업 범위로 구간 나눈다 웹 디자인 기준으로 정리하면:랜딩페이지 단일: 80~150만원 5페이지 내외 소형 사이트: 200~350만원 10페이지 이상 중형: 500~800만원 커머스/플랫폼 대형: 1000만원 이상앱은 좀 다르다:단순 소개/뷰어 앱: 150~250만원 58개 화면 소형 앱: 300500만원 10개 이상 화면 중형: 700~1000만원 복잡한 기능 대형: 1500만원 이상여기에 수정 횟수, 일정, 클라이언트 규모 보고 조정한다. 3. 시장가 확인한다 프리랜서 커뮤니티에서 물어본다. "여기 요구사항인데 얼마 정도 받으세요?" 크몽이나 프리모아 같은 플랫폼 가격도 본다. 시장 평균을 알아야 한다. 너무 싸게 받으면 나만 손해고, 너무 비싸면 일 안 들어온다. 지난달에 앱 UI 견적 낼 때 다른 디자이너 세 명한테 물어봤다. 350, 400, 450이 나왔다. 나는 400 불렀다. 붙었다. 4. 클라이언트 규모 본다 대기업/중견기업: +30~50% 스타트업 초기: 원가 or -10% 개인: 프로젝트 보고 판단 대기업은 프로세스 복잡하고 수정 많다. 담당자도 여러 명이다. 그만큼 더 받아야 한다. 스타트업은 예산 없는 경우 많다. 근데 포트폴리오 괜찮으면 싸게 해준다. 나중에 투자 받으면 또 연락 온다. 개인은 케바케다. 예산 있는 개인사업자는 잘 준다. 취미 프로젝트는 조심해야 한다.실제 견적서 쓰는 순서 이렇게 한다. 매번. 1단계: 요구사항 정리 클라이언트가 보낸 이메일 다시 읽는다. 세 번 읽는다.페이지/화면 개수: 정확히 몇 개? 반응형 필요한가: 모바일/태블릿/PC 다 해야 하나? 가이드 있나: 브랜드 가이드, 스타일 가이드 레퍼런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스타일 일정: 언제까지? 급한가? 수정 횟수: 명시 안 하면 무한 수정 위험애매하면 바로 물어본다. "화면 개수가 정확히 몇 개인가요?" "로그인 화면도 포함인가요?" 명확하게 해야 나중에 "이것도 포함인 줄 알았는데"가 안 나온다. 2단계: 시간 계산 솔직하게 계산한다. 자기한테 거짓말하면 안 된다. 랜딩페이지 하나 디자인하는 데 실제로 걸리는 시간:리서치/레퍼런스: 2~3시간 와이어프레임: 1~2시간 시안 작업: 5~8시간 수정: 3~5시간 최종 정리/가이드: 2시간총 15~20시간. 여기에 버퍼 30% 추가한다. 항상 예상보다 오래 걸린다. 그러면 2026시간. 내 시급 목표가 5만원이면 100130만원. 근데 이건 내부 계산이다. 클라이언트한테는 "120만원입니다" 이렇게만 말한다. 3단계: 구간 책정 내부 계산 120만원 나왔다. 그러면 100~150 구간으로 제시한다. "기본 100만원, 반응형 추가 시 +30만원, 급하게 일정 당기면 +20만원" 선택지를 준다. 클라이언트가 고를 수 있게. 실제로 이렇게 했더니 성사율이 올라갔다. "100만원입니다" 딱 하나만 주면 거절당하기 쉽다. "100만원 또는 120만원입니다" 하면 100 선택이라도 한다. 4단계: 계약서에 명시 견적 합의되면 계약서 쓴다. 꼭. 여기 들어가는 내용:정확한 금액 작업 범위 (화면 개수, 포함 항목) 일정 수정 횟수 (보통 3회) 추가 작업 시 비용 지급 조건 (선금 50%, 완료 후 50%) 저작권 관련이거 안 쓰면 100% 후회한다. 경험담이다. 작년에 계약서 없이 시작한 프로젝트가 있었다. "서로 믿고 하죠" 이러면서. 끝나고 나서 돈 안 줬다. 2주 동안 연락 두절. 결국 절반만 받았다. 그 뒤로는 무조건 계약서. 친구 프로젝트여도 쓴다. 가격 깎아달라고 할 때 대응법 이게 제일 스트레스다. "예산이 빠듯해서요. 조금만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 처음엔 "네 알겠습니다" 했다. 바보같이. 30만원 깎아주고, 50만원 깎아주고. 그런데 깎아줘도 일은 똑같다. 수정도 똑같이 들어온다. 나만 손해다. 지금은 이렇게 한다. 방법 1: 작업 범위 줄이기 "150만원이 어려우시면 작업 범위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5페이지를 3페이지로 줄이면 100만원 가능합니다." 가격 깎는 게 아니라 일을 줄이는 거다. 당연하다. 클라이언트는 보통 여기서 "아 그럼 150 그대로 할게요" 하거나 "그럼 3페이지로 합시다" 한다. 둘 다 괜찮다. 방법 2: 장기 거래 조건 "이번 프로젝트는 정가로 하고, 다음 프로젝트부터 20% 할인 드리겠습니다." 실제로 다음 프로젝트 오는 경우 30%쯤 된다. 근데 처음부터 깎아주는 것보단 낫다. 단골 생기면 영업 안 해도 되니까 그게 이득이다. 방법 3: 딱 잘라 거절 "죄송하지만 이 금액이 최선입니다. 이것보다 낮추면 작업 퀄리티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이렇게 해도 30%는 그냥 계약한다. 안 하면 마는 거다. 싸게 받고 스트레스받느니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실수하면서 배운 것들 4년간 많이 당했다. 실수 1: 무한 수정 지옥 "만족하실 때까지 수정해드립니다!" 이렇게 계약서에 썼다. 미친 짓이었다. 수정이 15번 들어왔다. 처음 시안으로 돌아가자고 했다가 다시 바꾸고. 한 달 붙잡혀 있었다. 지금은 "수정 3회 포함, 추가 수정 시 회당 20만원" 명시한다. 그러면 클라이언트도 신중하게 수정 요청한다. 실수 2: 선금 안 받기 "완료 후 일괄 지급" 조건으로 일했다. 끝나고 연락 안 됐다. 200만원 날렸다. 지금은 무조건 선금 50% 받고 시작한다. 입금 확인되면 작업 시작. 이게 룰이다. "저희는 선금을 안 하는데요?" 그럼 안 한다. 다른 클라이언트 찾는다. 실수 3: 급한 일정 웃돈 안 받기 "다음 주까지 가능하세요?" "네 가능합니다!" 주말 없이 일했다. 야근 5일. 근데 돈은 똑같이 받았다. 바보 같았다. 지금은 "일반 일정 2주 소요, 1주 단축 시 +30% 추가" 이렇게 한다. 급하면 더 내야지. 실수 4: 계약서 대충 쓰기 "디자인 작업 일체" 이렇게만 썼다. 끝나고 나서 "소셜미디어 홍보 이미지도 포함인 줄 알았는데요?" 이런다. 지금은 작업 범위 하나하나 다 적는다. "메인 페이지 1개, 서브 페이지 3개, 모바일 반응형 포함" 이런 식으로. 포함 안 되는 것도 쓴다. "SNS 홍보물, 명함, 브로슈어는 별도 견적" 포트폴리오로 가격 올리는 법 실력 늘면 가격도 올려야 한다. 당연한 건데 못 올리는 사람 많다. 나도 그랬다. 프리랜서 2년차 때까지 랜딩페이지 80만원 받았다. 3년차에 100만원으로 올렸다. 지금은 120~150만원. 어떻게 올렸냐. 1. 포트폴리오 업데이트 좋은 프로젝트 끝나면 바로 포트폴리오에 넣는다. 케이스 스터디 형식으로.클라이언트 요구사항 문제 해결 과정 최종 결과물 성과 (가능하면)"이 작업으로 클라이언트 전환율 20% 증가" 이런 거 있으면 금상첨화다. 포트폴리오 10개쯤 쌓이면 견적 올릴 때 자신감 생긴다. 2. 전문 분야 만들기 "웹/앱 디자인 다 합니다"보다 "헬스케어 앱 UI 전문"이 낫다. 나는 작년부터 이커머스 쪽 많이 했다. 쇼핑몰 UI, 상품 상세페이지. 이제 "커머스 전문가입니다" 할 수 있다. 전문가는 비싸다. 당연하다. 3. 클라이언트 후기 프로젝트 끝나면 꼭 물어본다. "간단한 후기 부탁드려도 될까요?" 10개 중 3~4개는 써준다. 이거 모아서 웹사이트에 올린다. 후기 있으면 신뢰도 올라간다. 신뢰도 오르면 가격 올려도 된다. 4. 가격 테스트 조금씩 올린다. 급하게 두 배로 올리면 일 안 들어온다. 80만원 받다가 90만원, 100만원, 120만원. 이렇게 단계별로. 거절당하면 그게 상한선이다. 그 밑으로 조정한다. 지금은 150만원 불러도 절반은 오케이 한다. 그럼 적정가다. 플랫폼별 견적 전략 크몽, 프리모아, 숨고. 다 해봤다. 플랫폼마다 가격대가 다르다. 전략도 달라야 한다. 크몽낮은 가격대 시장 랜딩페이지 30~80만원선 경쟁 심함 리뷰 쌓기 좋음처음 시작하거나 포트폴리오 쌓을 때 쓴다. 돈보다 실적. 나는 초반에 여기서 10개 정도 했다. 싸게 받았지만 후기 쌓였다. 프리모아중간 가격대 랜딩페이지 80~150만원 기업 클라이언트 많음 포트폴리오 심사 있음지금 메인으로 쓴다. 가격도 괜찮고 클라이언트 퀄리티도 괜찮다. 수수료 15%인데 그냥 견적에 포함해서 받는다. 직거래 (자체 웹사이트/소개)높은 가격대 내 마음대로 책정 수수료 없음 신뢰 구축 필요목표는 여기다. 플랫폼 거치지 않고 직접 받는 거. 작년부터 개인 웹사이트 만들어서 운영한다. 아직 비율은 30%쯤. 클라이언트가 직접 찾아오면 가격 협상도 편하고 수수료도 안 떼인다. 견적 협상 대화 스크립트 실제로 쓰는 멘트들. 상황 1: 예산 물을 때 클라이언트: "예산이 어떻게 되세요?" 나: "프로젝트 범위에 따라 달라지는데요, 일반적으로 랜딩페이지는 120~150만원선입니다. 정확한 견적은 요구사항 보고 드릴게요." 구간으로 말한다. 하나만 말하면 협상 여지 없다. 상황 2: 너무 싸게 말할 때 클라이언트: "50만원 생각했는데요." 나: "50만원으로는 원하시는 퀄리티 작업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신 작업 범위를 줄여서 맞춰드릴 수는 있어요. 어떤 게 가장 중요하신가요?" 거절하되 대안을 준다. 상황 3: 깎아달라고 할 때 클라이언트: "10만원만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 나: "가격은 어렵지만, 선금 조건을 조정하거나 다음 프로젝트 할인은 가능합니다." 가격 대신 다른 걸 준다. 상황 4: 일정 급할 때 클라이언트: "일주일 안에 가능할까요?" 나: "일반 일정은 2주인데 급하시면 가능합니다. 다만 긴급 일정은 30% 추가 비용이 발생해요." 가능하다고 말하되 조건을 단다.견적은 과학이 아니다. 정답 없다. 클라이언트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르다. 그래도 기준은 있어야 한다. 내 최저선, 시장가, 내 가치. 이 세 개만 알면 된다. 4년 하면서 배운 건 딱 하나다. 싸게 받으면 나만 손해고, 비싸게 받아도 필요한 사람은 준다는 것. 가격 올리는 게 무섭다. 일 안 들어올까 봐. 근데 올려도 된다. 내 실력만큼. 오늘도 견적서 세 개 보냈다. 하나는 붙고 둘은 떨어지겠지. 그게 정상이다.
- 09 Dec, 2025
프리랜서의 일 없는 날: 넷플릭스를 봐도 죄책감이 드는 이유
프리랜서의 일 없는 날: 넷플릭스를 봐도 죄책감이 드는 이유 오전 11시, 할 일이 없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떴다. 9시였다. 메일함을 열었다. 새 프로젝트 문의 0건. 클라이언트 피드백 0건. 수정 요청 0건. 통장을 확인했다. 지난주 입금된 프로젝트 금액이 전부다. 다음 입금 예정은 2주 후. 할 일이 없다. 보통 사람들은 이럴 때 좋아한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프리랜서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오예, 오늘 쉬는 날이네!" 했다. 지금은 다르다. 가슴이 답답하다.넷플릭스를 켰다, 그리고 꺼버렸다 소파에 앉았다. 노트북을 열었다. 넷플릭스. "볼까?" 아까부터 보고 싶었던 드라마가 있다. 지난주 친구가 추천했다. "너 취향 저격일 거야." 재생 버튼을 눌렀다. 오프닝이 나온다. 5분 지났다. 집중이 안 된다. 화면을 보는데 머릿속은 딴 데 있다. '이거 보고 있을 시간에 포트폴리오 정리할 걸.' '아니면 새로운 디자인 툴 공부라도.' '아 맞다, 세금 신고 자료 정리 안 했지.' 드라마를 껐다. 15분도 안 봤다. 노트북을 닫았다. 다시 폈다. 유튜브를 켰다. "프리랜서 영업 노하우" 검색. 영상을 틀었다. 30분짜리 강의. 진지하게 봤다. 메모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것도 일 아닌가. 쉬는 건데 왜 이러고 있지.쉬면 뒤처진다는 착각 프리랜서 4년 차다. 이 불안은 언제부터였을까. 회사 다닐 때는 안 그랬다. 퇴근하면 진짜 끝이었다. 주말엔 폰도 안 봤다. "회사 일 생각하면 지는 거다" 이게 원칙이었다. 그런데 프리랜서는 다르다. 일이 있을 땐 "왜 이렇게 많지" 하면서 투덜댄다. 밤 11시까지 작업한다. 주말도 없다. 일이 없을 땐 "다음 달 뭐 먹고 살지" 걱정한다. 쉬는데도 불안하다. 어제 프리랜서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요즘 일 없는 사람?"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댓글이 30개 넘게 달렸다. 다들 불안하다고 했다. 쉬는 게 죄 짓는 기분이라고. 한 사람이 썼다. "쉬면 다른 디자이너한테 밀리는 것 같아요. 그 사이 다들 성장하고 있을 것 같고."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친구들 인스타그램을 봤다. 프리랜서 친구들. 다들 뭔가 하고 있다. 전시 갔다, 세미나 들었다, 새로운 작업 시작했다. 나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올렸다. 책상 사진. "오늘도 작업 중"이라고. 거짓말이다. 사진만 찍고 아무것도 안 했다.진짜 휴식이 뭔지 모르겠다 회사 다니는 친구를 만났다. 지난주 금요일. "너 요즘 어때? 일은?" "음, 괜찮아. 바빠." 거짓말이다. 한가하다. 친구가 말했다. "부럽다 프리랜서.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잖아." 웃었다. "그러게." 집에 왔다. 침대에 누웠다.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고? 쉴 수가 없다. 쉬는 게 무섭다. 일 없는 날이 3일 지나면 통장 잔고만 확인한다. 5일 지나면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한다. 일주일 지나면 '내 실력이 부족한가' 의심한다. 그래서 쉬는 날도 뭔가 한다. 온라인 강의 듣는다. 디자인 트렌드 리서치한다. 포트폴리오 다듬는다. 이게 휴식인가. 아니다. 그럼 뭐가 휴식인가. 모르겠다. 수입이 불규칙하면 마음도 불규칙하다 지난달 수입은 450만원이었다. 프로젝트 3개. 이번 달은 아직 200만원. 프로젝트 1개. 다음 달은 모른다. 확정된 게 없다. 이게 제일 힘들다. 예측이 안 된다. 회사원은 매달 정해진 날 통장에 돈이 들어온다. 월급날이 있다. 프리랜서는 없다. 클라이언트가 입금할 때 들어온다. 늦으면 2주, 한 달도 밀린다. 그래서 돈이 들어온 날엔 기분이 좋다. "이 정도면 괜찮네." 일주일 지나면 불안하다. "다음 거는 언제 들어오지." 2주 지나면 초조하다. "새 프로젝트 안 들어오면 어떡하지." 한 달 지나면 공황이다. "통장 바닥났다. 카드값 나가면..." 그래서 쉬는 날에도 쉴 수가 없다. 쉬는 게 돈 버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다. 예전에 읽은 기사가 생각난다. "프리랜서는 휴가비가 없다. 쉬는 날은 무급이다." 맞는 말이다. 쉬면 돈이 안 들어온다. 일해야 돈이 들어온다. 그래서 아프면 그냥 버틴다. 병원 가면 그날 일 못 한다. 돈이 아깝다. 몸이 이상해도 "괜찮아, 이 정도는" 한다. 그러다 진짜 아파진다. 불안의 정체는 무엇인가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생각해봤다. 첫 번째, 다음 달이 불확실하다. 지금 일이 없으면 다음 달도 없을 것 같다. 근거 없는 불안이다. 실제로는 계속 일이 들어왔다. 4년 동안 굶은 적 없다. 그런데도 불안하다. 두 번째, 비교한다. 남들은 다 잘하는 것 같다. SNS를 보면 다들 바쁘다. 프로젝트 많다. 나만 한가한 것 같다. 착각이다. 다들 바쁜 척한다. 나도 그렇게 한다. 세 번째, 쉬는 걸 배운 적이 없다. 학교 다닐 때부터 계속 뭔가 했다. 스펙 쌓고, 포트폴리오 만들고, 취업하고, 일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이 없었다. 그래서 쉬는 게 낯설다. 불안하다. 네 번째, 주변의 시선. 부모님은 프리랜서를 인정 안 한다. "그냥 회사 다녀라." 친구들은 "자유롭겠다" 한다. 자유로운 건 맞다. 그런데 불안정하다. 이걸 설명하기 어렵다. 다섯 번째, 책임감.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한다. 회사는 내가 쉬어도 돌아간다. 프리랜서는 내가 멈추면 멈춘다. 내 인생이 내 책임이다. 무겁다. 넷플릭스를 다시 켰다 오후 3시. 다시 소파에 앉았다. 노트북을 열었다. 넷플릭스. 아까 그 드라마. 계속 볼까. 재생 버튼을 눌렀다. 5분 지났다. 또 집중이 안 된다. '아, 진짜.' 그냥 봤다. 억지로. "쉬는 거다, 오늘은. 뭐라든." 30분 지났다. 내용이 재밌다. 친구 말이 맞았다. 내 취향이다. 1시간 지났다. 몰입했다. 불안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2시간 지났다. 에피소드 3개 봤다. 배가 고프다. 주방에 가서 라면을 끓였다. 먹으면서 4번째 에피소드를 틀었다. 핸드폰을 봤다. 메일이 왔다. "안녕하세요, 디자인 의뢰 건으로 연락드립니다." 심장이 뛴다. 메일을 열었다. 읽었다. 브랜딩 작업. 예산 괜찮다. 일정도 여유 있다. "네, 가능합니다. 미팅 일정 조율하실까요?" 답장을 보냈다. 다시 드라마를 봤다. 불안이 좀 줄었다. 일이 들어왔으니까. 그런데 이상하다. 일 없을 때 불안하고, 일 있을 때 안심하고. 이게 맞나. 죄책감은 어디서 오는가 저녁 7시. 드라마를 다 봤다. 시즌 1 완주. 10시간. 보통 때 같으면 "시간 낭비했다" 생각했을 거다. 오늘은 좀 다르다. 재밌었다. 진짜 쉬었다. 아무 생각 안 하고 봤다. 죄책감은 있었다. 중간중간 '이거 보고 있을 때냐' 싶었다. 그런데 참았다. 끝까지 봤다. 이게 맞는 것 같다. 일이 없다고 매일 공부할 필요 없다. 매일 포트폴리오 다듬을 필요 없다. 그냥 쉬어도 된다. 드라마 봐도 된다. 넷플릭스 정주행해도 된다. 내일 일할 에너지를 충전하는 거다. 진짜 휴식이다. 그런데 이걸 받아들이기 어렵다. 4년째 그렇다. "쉬면 뒤처진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있다. 누가 심은 걸까. 사회? 자본주의? SNS? 아니면 나? 모르겠다. 프리랜서의 역설 프리랜서가 자유롭다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시간은 자유롭다. 출근 안 해도 된다. 야근 강요 없다. 주말에 일 안 해도 된다. 그런데 마음은 자유롭지 않다. 항상 일 생각한다. 쉬어도 불안하다. 다음 달 걱정한다. 회사원은 반대다. 시간은 자유롭지 않다. 9시 출근, 6시 퇴근. 야근, 주말 근무. 그런데 마음은 좀 더 자유롭다. 퇴근하면 끝이다. 월급날은 정해져 있다. 뭐가 더 나은가. 모르겠다.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프리랜서가 맞는 것 같다. 회사는 못 다니겠다. 그런데 이 불안은 어떻게 해야 하나. 4년째 고민이다. 오늘의 결론 오늘 하루는 괜찮았다. 일 없는 날이었다. 넷플릭스 봤다. 10시간. 죄책감 있었다. 그런데 견뎠다. 저녁에 메일 왔다. 새 프로젝트. 운이 좋았다. 다음엔 또 어떨지 모른다. 일주일 동안 연락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어떻게든 된다. 프리랜서 5년 차가 되면 좀 나을까. 10년 차 선배한테 물어봤다. 예전에. "언제쯤 불안 안 해요?" "글쎄, 나도 아직 불안해." 웃었다. 10년 차도 불안하다니. 그럼 이건 고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건가. 프리랜서의숙명. 일 없는 날의 불안. 쉬는 날의 죄책감. 이게 프리랜서 인생이다. 그래도 계속한다. 회사는 못 다니겠으니까.내일은 또 메일함 확인부터 시작이다. 새 프로젝트 미팅 준비해야지. 그리고... 드라마 시즌 2도 나왔던데.
- 09 Dec, 2025
계약서를 안 읽다가 당한 일들
계약서를 안 읽다가 당한 일들 첫 번째 사건: 수정 무제한의 지옥 프리랜서 1년 차였다. 클라이언트가 좋은 사람 같았다. 웃으면서 "한프리님 포트폴리오 정말 마음에 들어요"라고 했다. 계약서 받았다. 대충 훑어봤다. 금액 확인하고 바로 싸인했다. "수정은 3회까지 무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수정 요청은 합리적 범위 내에서 진행한다"는 문구가 있었다. '합리적'의 기준은 클라이언트가 정했다. 첫 시안 보냈다. "좋은데요, 약간만 수정해주세요." 12번 수정했다. 12번. 색 바꾸고, 레이아웃 바꾸고, 다시 원래대로 돌리고, 또 바꾸고. "어제 말씀하신 A안으로 다시 가면 안 될까요?" 300만원 프로젝트에 한 달 반을 썼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최저임금도 안 됐다. 그때 배웠다. "수정 N회"를 명확히 명시하지 않으면 끝이 없다는 걸.두 번째 사건: 지연 페널티는 나만 2년 차 여름이었다. 스타트업 브랜딩 프로젝트. 600만원. 큰 건이었다. 계약서에 이렇게 써 있었다. "작업 기간 60일, 납기 지연 시 일당 5만원 차감." 나는 봤다. 근데 다른 조항은 안 봤다. "클라이언트의 피드백 지연은 작업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문구가 있었다. 시안 보냈다. 2주 뒤에 피드백 왔다. "죄송해요, 대표님이 출장 가셔서요." 수정안 보냈다. 또 2주. "내부 검토 중입니다." 최종안 보냈다. 또 10일. "이사회 승인 기다리고 있어요." 결국 90일 걸렸다. 클라이언트 피드백 대기 시간만 40일. 근데 나한테 청구서 왔다. "30일 지연, 150만원 차감." 항의했다. "피드백 늦으신 거잖아요." "계약서 보세요. 저희 피드백 지연은 별개입니다." 그때 배웠다. 페널티는 쌍방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걸. 지금은 이렇게 쓴다. "클라이언트 피드백 지연 시 납기 자동 연장."세 번째 사건: 저작권은 누구 거? 3년 차 봄. 화장품 브랜드 패키지 디자인. 800만원. 작업 끝났다. 돈 받았다. 포트폴리오 올렸다. 일주일 뒤 연락 왔다. "한프리님, 포폴 내려주세요." "네? 왜요?" "저작권이 저희한테 있어요. 계약서에 있습니다." 확인했다. 있었다. "본 프로젝트의 모든 저작권은 갑(클라이언트)에게 귀속된다." 포트폴리오 권리도 없었다. 수정도 못했다. 2차 사용도 못했다. 내 작업물인데 내 거가 아니었다. 더 황당한 건 1년 뒤였다. 그 클라이언트가 내 디자인을 다른 제품에도 썼다. 추가 비용 없이. "저작권 저희 거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계약서에 그렇게 써 있었으니까. 지금은 이렇게 쓴다. "저작권 양도 시 추가 비용 발생. 포트폴리오 사용 권리는 을(디자이너)에게 있음." 저작권 양도하려면 최소 30% 더 받는다.네 번째 사건: 선금 없이 시작한 참사 4년 차 겨울. 광고 대행사에서 연락 왔다. "급한 프로젝트인데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450만원. 2주 작업. 괜찮았다. "선금은요?" "저희는 프로젝트 완료 후 일괄 정산이에요. 대행사라서요." 믿었다. 대행사면 괜찮겠지. 2주 밤샘하면서 끝냈다. 최종 파일 넘겼다. "정산은 언제쯤 되나요?" "다음 달 25일이요." 다음 달 25일. 연락 없었다. 내가 연락했다. "아, 클라이언트 쪽에서 아직 입금이 안 됐어요." 또 한 달.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3개월 뒤에야 받았다. 그것도 100만원 깎여서. "클라이언트가 수정 많았다고 차감했어요." 싸우기 싫었다. 350만원이라도 받았다. 계약서에 이렇게 써 있었다. "최종 금액은 클라이언트 평가 후 확정." 그때 배웠다. 선금 50%는 무조건이라는 걸. 지금은 선금 안 주는 곳이랑 안 한다. 아무리 급해도. 다섯 번째 사건: 비밀유지 조항의 함정 2년 차 가을. 스타트업 앱 디자인. 500만원. 계약서에 "비밀유지의무" 조항이 있었다.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렇게 써 있었다. "프로젝트 관련 모든 사항은 영구적으로 비밀유지. 포트폴리오 사용 시 사전 서면 동의 필수." 작업 끝나고 포폴 올리려고 연락했다. "안 됩니다. 저희 서비스 아직 런칭 전이에요." 1년 뒤. "아직이요." 2년 뒤. 그 스타트업 망했다. 내 포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500만원짜리 작업이 증명 불가능. 이력서에 "비공개 프로젝트"라고만 쓸 수밖에. 지금은 이렇게 쓴다. "비밀유지 기간은 서비스 런칭 후 3개월까지. 포트폴리오는 회사명 비공개 조건으로 사용 가능." 내 커리어도 중요하니까. 여섯 번째 사건: 계약 해지 조항 3년 차 여름. 장기 프로젝트. 월 300만원씩 6개월. 계약서에 "해지 시 30일 전 통보" 조항이 있었다. 클라이언트만. 나는? "을은 즉시 해지 불가. 위약금 50% 발생." 2개월 차에 다른 큰 프로젝트 들어왔다. 시간이 안 됐다. "죄송한데 계약 종료하면 안 될까요?" "위약금 600만원입니다. 남은 4개월치 50%요." 안 할 수도 없었다. 600만원은 너무 컸다. 결국 둘 다 했다. 한 달 동안 하루 4시간씩만 잤다. 큰 프로젝트는 퀄리티 낮아졌고, 장기 프로젝트는 연장됐다. 그때 배웠다. 해지 조항은 동등해야 한다는 걸. 지금은 이렇게 쓴다. "쌍방 30일 전 통보 시 위약금 없이 해지 가능." 일곱 번째 사건: 부가세의 비밀 1년 차. 처음 받은 큰 프로젝트. 1000만원. "천만원 받는다!" 기뻤다. 계약서에 "공급가 1000만원" 이렇게만 써 있었다. 세금계산서 끊었다. 1000만원 + 부가세 100만원 = 1100만원 받는 줄 알았다. 입금 확인했다. 1000만원. "부가세는요?" "계약 금액이 1000만원이잖아요. 부가세 포함이요." 실수령액 910만원. (부가세 100만원 나중에 환급받음) 지금은 무조건 "부가세 별도"라고 쓴다. "공급가 1000만원 (VAT 별도)" 10% 차이는 크다. 지금 내 계약서 이제 내 계약서는 이렇다. 작업 범위작업 항목 구체적으로 (메인 5페이지, 서브 10페이지) 수정 횟수 명시 (3회, 추가 시 회당 50만원) 추가 요청 시 별도 견적기간 및 일정총 작업 기간 (클라이언트 피드백 기간 제외) 피드백 기한 (7일 이내, 초과 시 납기 자동 연장) 지연 페널티 (쌍방 동일, 일 5만원)금액 및 지불총 금액 (부가세 별도) 선금 50% (작업 시작 전) 잔금 50% (최종 파일 전달 전) 지불 기한 (7일 이내)저작권기본 사용권만 양도 (특정 프로젝트 내) 저작권 완전 양도 시 +30% 포트폴리오 사용권은 디자이너 보유 2차 사용 시 별도 협의해지 조항쌍방 30일 전 통보 진행분은 정산 후 해지 클라이언트 귀책 시 50% 지급 디자이너 귀책 시 선금 반환기타비밀유지 기간 (서비스 런칭 + 3개월) 분쟁 해결 (서울중앙지방법원 관할) 계약서 수정은 서면 합의A4 3장 분량. 처음엔 "너무 깐깐하다"고 했다. 근데 제대로 된 클라이언트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까다롭게 구는 곳은 애초에 거를 수 있었다. 계약서 협상 팁 1. 수정하자고 먼저 말하기 "계약서 검토했는데 몇 가지 수정하면 안 될까요?" 클라이언트 계약서 그대로 쓰면 100% 불리하다. 2. 구체적 숫자로 "합리적 범위" "적절한 기간" 이런 거 다 빼기. "수정 3회" "피드백 7일 이내" 이렇게. 3. 버릴 건 버리기 "저작권 양도는 어렵습니다. 대신 사용권은 드릴게요." 안 되면 금액 올리기. 4. 계약서 읽는 시간 갖기 "계약서 검토 후 내일 회신 드릴게요." 현장에서 바로 싸인 요구하면 의심부터. 5. 변호사 검토 (큰 건은) 500만원 넘는 프로젝트는 20만원 주고 변호사 검토. 나중에 1000만원 날리는 것보다 훨씬 싸다. 지금도 실수는 한다 한 달 전. 급한 프로젝트. 계약서 대충 읽었다. "폰트 라이선스는 을이 책임진다"는 문구 못 봤다. 폰트 라이선스 300만원 나갔다. 몇 번 당해도 또 당한다. 바쁘면 방심한다. 그래도 예전보단 낫다. 1년 차 때는 계약서가 뭔지도 몰랐으니까. 프리랜서 계약서 체크리스트 내가 만든 체크리스트다. 프로젝트 들어올 때마다 확인한다. □ 작업 범위가 구체적인가?□ 수정 횟수가 명시되어 있나?□ 추가 작업 비용 조항이 있나?□ 페널티가 쌍방에 적용되나?□ 선금 조항이 있나?□ 저작권 조항을 확인했나?□ 포트폴리오 사용 가능한가?□ 해지 조항이 공평한가?□ 부가세 별도인가?□ 비밀유지 기간이 합리적인가? 하나라도 이상하면 수정 요청한다. 안 되면 안 받는다.계약서는 안 읽으면 그냥 "네" 하고 도장 찍는 거랑 같다. 몇 번 당하고 나서야 배웠다. 지금은 계약서 읽는 시간이 작업 시간만큼 중요하다는 걸 안다. 아직도 실수하지만, 예전처럼 크게는 안 당한다. 그게 성장이겠지.
- 08 Dec, 2025
클라이언트 에피소드: '디자이너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못하냐'는 말
클라이언트 에피소드: '디자이너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못하냐'는 말 그 말을 들은 순간 목요일 오후 3시. 화상 회의. 클라이언트가 화면 공유를 켰다. 내가 보낸 시안이 떴다. "이게 뭐예요?" 목소리 톤이 이상했다. "디자이너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못하냐고요." 숨이 막혔다. 피드백이 아니었다. 인신공격이었다. "컬러가 이상해요" 같은 게 아니라. "왜 이렇게 못하냐"였다.8년 경력이다. 프리랜서 4년차다. 그동안 수백 개 프로젝트 했다. 대기업 인하우스 4년 했다. 근데 "왜 이렇게 못하냐"를 들었다. 회의 끝나고 30분 동안 멍했다. 노트북 화면만 쳐다봤다. 아무것도 안 보였다. 문제는 피드백이 아니었다 다음 날 다시 봤다. 클라이언트가 뭘 원하는지 정리했다.컬러 톤 차갑게 레이아웃 여백 더 폰트 크기 키워달라이렇게 말하면 되는 거였다. 근데 "왜 이렇게 못하냐"로 시작했다.이건 피드백이 아니다. 감정 표출이다. "이 부분 수정해주세요"는 작업 지시다. "왜 이렇게 못하냐"는 모욕이다. 차이를 모르는 클라이언트가 있다. 프리랜서한테 돈 주면 뭐든 말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직원한테는 못하는 말을 프리랜서한테는 한다. 8년 경력이 무너지는 순간 그날 밤 잠이 안 왔다. '정말 내가 못하는 건가?' 포트폴리오를 다시 봤다. 전 직장 작업물, 프리랜서 프로젝트들. 다 괜찮았다. 객관적으로 봐도. 근데 자신감이 흔들렸다. 이게 더 화났다. 한 사람의 한마디가 8년을 무너뜨렸다. 전 직장 팀장은 "한프리 씨 작업 믿고 맡긴다"고 했다. 지난달 클라이언트는 "다음 프로젝트도 꼭 부탁드린다"고 했다. 근데 이 한 사람의 말이 전부를 덮었다. 프로페셔널의 한계 금요일 아침. 수정안 보냈다. 클라이언트가 요구한 거 다 반영했다. "이게 진작 이렇게 나왔어야죠." 답장이 왔다. 사과는 없었다. '못한다'는 말에 대한.프로페셔널하게 대응했다. "수정 완료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속으로는 "다시는 일 안 할 거다" 생각했다. 근데 프로페셔널은 감정 빼고 일한다. 그게 프로다. 계약서에 명시된 수정 횟수 2회. 1회 남았다. 끝까지 한다. 내 커리어에 흠 안 남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반격이다. 자존감 관리는 내 몫이다 주말 내내 생각했다. 프리랜서 커뮤니티에 올렸다. "이런 클라이언트 어떻게 대응하세요?" 댓글 30개 달렸다. 다들 비슷한 경험 있었다. "디자인 공부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돈 아깝다" "이 정도면 환불 요구해야지" 프리랜서한테는 일상이었다. 그게 더 슬펐다.한 명의 말이 전부가 아니다. 8년이 증명한다.
- 07 Dec, 2025
프리랜서 5년이 되면 다시 취직할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일까?
새벽 3시, 채용공고를 본다 새벽 3시. 잠이 안 와서 원티드를 켰다. "경력 3년 이상, 인하우스 경력 필수" 스크롤을 내렸다. "최근 3년 이내 정규직 경력자" 프리랜서 4년차. 총 경력 8년. 이력서에는 뭐라고 써야 할까. 클라이언트가 3개월째 입금을 안 했다. 재촉하면 "다음 주에요" 한다. 통장엔 87만원. 이번 달 카드값 142만원. '이러다 다시 취업해야 하나.' 그 생각이 든 순간, 가슴이 답답했다. 프리랜서 5년 하면 정말 취직 못 하는 걸까.업계에서 도는 소문 프리랜서 커뮤니티에 물어봤다. "5년 차인데 다시 정규직 가능할까요?" 댓글이 달렸다. "저 7년 차인데 작년에 들어갔어요. 포폴이 좋으면 돼요." "면접 10곳 떨어졌습니다. 근속 기간이 짧다고." "에이전시는 환영하던데요?" "대기업은 힘들어요. 스타트업은 괜찮습니다." 답이 없다. 사람마다 다르다. 전 직장 동료한테 물어봤다. 지금 시니어 디자이너다. "솔직히 말할게. 면접관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게 뭔지 알아?" "뭔데?" "왜 프리랜서 했고, 왜 다시 회사 오려는지." "그게 뭐가 문제야?" "'적응 못 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어. 출퇴근, 상하관계, 회사 문화. 프리랜서는 자유로웠잖아. 그게 독이 될 수 있어." 아. 그런 거구나. 인사담당자에게 들은 진짜 이유 지인 소개로 스타트업 HR 담당자를 만났다. "프리랜서 경력자 채용 어떻게 보세요?" "솔직히?" "네." "좋아하지 않아요. 대부분." 이유를 물었다. "첫째, 조직 생활 적응. 프리랜서는 혼자 일했잖아요. 팀 프로젝트에서 충돌할 수 있어요." "둘째, 연봉 협상. 프리랜서 때 많이 벌었다고 하면 회사 급여 체계랑 안 맞아요." "셋째, 근속 기간. 다시 나갈 거 아니냐는 의심." "그럼 절대 안 뽑나요?" "아니요. 포트폴리오가 확실하면 뽑아요. 특히 회사가 못 하는 걸 할 수 있으면." 구체적으로 물었다. "예를 들면?" "브랜딩 전체를 혼자 해본 경험. 클라이언트 대응 능력. PM 역할까지 한 프로젝트. 프리랜서만 가진 강점이 있거든요." 집에 오면서 생각했다. 내가 가진 강점은 뭘까.실제로 복귀한 사람들 프리랜서 5년 하고 복귀한 선배를 만났다. "면접 몇 개 봤어요?" "15개." "붙은 데는?" "2개." 생각보다 적었다. "떨어진 이유가 뭐였어요?" "대부분 '프리랜서 기간이 공백처럼 보인다'였어요. 특히 대기업." "어떻게 설득했어요?" "프로젝트 리스트 정리했어요. 클라이언트 이름, 매출, 역할. 숫자로 보여줬죠." 이력서를 보여줬다. "2020-2024 프리랜서 디자이너총 37개 프로젝트 진행 (누적 매출 2억 1천만원) 주요 클라이언트: ㅇㅇ전자, ㅇㅇ카드, ㅇㅇ스타트업 브랜딩 8건, 웹/앱 UI 29건 혼자서 기획-디자인-클라이언트 관리 전 과정 수행""공백이 아니라 1인 사업자처럼 쓴 거네요." "맞아요. 그게 핵심이에요." 다른 복귀자는 달랐다. "저는 6년 차인데 스타트업 들어갔어요. 연봉은 프리랜서 때보다 적어요." "왜 들어갔어요?" "지쳤어요. 영업, 견적, 입금 독촉. 디자인만 하고 싶었어요." "후회 안 해요?" "월급날은 행복해요. 통장 잔고 걱정 안 해도 되니까." 사람마다 이유가 다르다. 내 포트폴리오를 다시 봤다 집에 와서 포트폴리오를 펼쳤다. 37개 프로젝트. 4년 동안. 이 중에서 회사가 원하는 게 뭘까. 정리했다. 프리랜서 경력의 강점:혼자서 프로젝트 전체를 돌려봤다 10곳 넘는 클라이언트와 일했다 마감 관리, 예산 관리 직접 했다 다양한 산업군 경험 (리테일, IT, 금융, F&B) 클라이언트 요구사항 정리 능력면접에서 말하면 안 되는 것:"회사 생활이 답답해서 나왔어요" "자유롭게 일하고 싶어서요" "프리랜서 수입이 더 좋았어요" "상사랑 안 맞아서요"면접에서 말해야 하는 것:"더 큰 프로젝트를 팀으로 하고 싶어요" "체계적인 시스템을 배우고 싶어요" "한 브랜드를 길게 가져가고 싶어요" "프리랜서로 할 수 없는 스케일을 경험하고 싶어요"말투를 바꿔야 한다. "프리랜서 해서 자유로웠어요" → "프리랜서로 다양한 경험을 쌓았어요" "회사가 싫어서 나왔어요" → "커리어 전환을 위해 선택했어요" "돈 때문에 힘들어요" → "안정적인 환경에서 성장하고 싶어요" 포장이 아니다. 관점의 차이다.5년이 독인가, 약인가 결론을 내렸다. 프리랜서 5년이 취직 못 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준비 안 된 5년이 문제다. 같은 프리랜서 5년이어도:비슷한 프로젝트만 반복한 5년 vs 성장한 5년 클라이언트 눈치만 본 5년 vs 주도적으로 일한 5년 포트폴리오 정리 안 한 5년 vs 체계적으로 기록한 5년이 차이가 크다. HR 담당자가 말했다. "프리랜서 경력이 독이 되는 사람은요, 프리랜서 정체성에 갇힌 사람이에요." "무슨 뜻이에요?" "'저는 자유로운 게 좋아요', '조직은 답답해요'. 이런 마인드. 그럼 안 뽑죠." "반대는요?" "'프리랜서로 이런 걸 배웠고, 이제 이걸 조직에서 해보고 싶어요.' 이러면 환영이죠." 다시 채용공고를 켰다. 이번엔 다르게 읽혔다. "경력 3년 이상" → 나는 8년이다. 프리랜서 4년 포함. "인하우스 경력 필수" → 전 직장 4년 있다. 최근은 아니지만. "포트폴리오 필수" → 37개 프로젝트. 준비됐다. 지원할 수 있다.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이력서를 고쳤다. Before: "2020-2024 프리랜서" After: "2020-2024 프리랜서 브랜드 디자이너 (1인 사업)연평균 9개 이상 프로젝트 수행 기획-디자인-클라이언트 관리 전 과정 리드 B2B, B2C 다양한 산업군 브랜딩 경험 주요 성과: ㅇㅇ 스타트업 브랜드 리뉴얼 (시리즈 A 투자 유치 성공)"숫자와 성과를 넣었다. 자기소개서도 바꿨다. Before: "프리랜서로 자유롭게 일했지만, 이제는 팀으로 일하고 싶습니다." After: "프리랜서로 37개 프로젝트를 혼자 완수하며 빠른 실행력과 클라이언트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웠습니다. 이제 이 경험을 바탕으로 더 큰 규모의 브랜드를 팀과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읽어보니 다르다. 같은 경력인데 다르게 보인다. 포트폴리오 PDF를 만들었다.1페이지: 경력 요약 + 핵심 역량 2-4페이지: 대표 프로젝트 3개 (과정 포함) 5페이지: 프로젝트 리스트 (37개 요약) 6페이지: 수상, 언론 보도, 클라이언트 후기37개를 다 넣지 않았다. "많다"가 중요한 게 아니다. "뭘 했는지"가 중요하다. 지원서를 냈다. 5곳. 떨린다. 면접을 봤다 첫 면접. 스타트업. 브랜드 디자이너 시니어. "프리랜서 왜 하셨어요?" 준비한 답. "전 직장에서 인하우스로 4년 일했는데, 다양한 산업을 경험하고 싶었어요. 프리랜서로 리테일, IT, 금융, F&B를 해보면서 브랜딩 전체를 혼자 돌려본 게 큰 자산이에요." "왜 다시 회사로 오려고요?" "프리랜서로는 한계가 있어요. 혼자선 큰 브랜드를 깊이 있게 못 가요. 팀과 함께 장기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요." "적응 걱정 안 돼요?" "전 직장에서 4년 다녔고, 프리랜서 때도 10곳 넘는 클라이언트랑 일했어요. 오히려 다양한 사람들과 일하는 데 익숙해요." 합격했다. 두 번째 면접. 에이전시. 디자인 팀장. "프리랜서 수입이랑 연봉 차이 클 텐데요?" "프리랜서 때 월평균 400만원 정도였어요. 하지만 4대보험, 퇴직금, 연차 없었죠. 안정성을 계산하면 비슷해요." "프로젝트 경험 중 제일 어려웠던 게 뭐예요?" "클라이언트가 중간에 방향을 3번 바꾼 프로젝트요. 마감은 그대론데 작업은 다시. 그때 배웠어요. 초반에 방향 확정을 확실히 받아야 한다는 거." "그걸 여기서 어떻게 쓸 건가요?" "클라이언트 관리 경험이에요. 요구사항 정리, 마일스톤 체크, 리스크 미리 파악. 프리랜서가 혼자 다 해야 했던 거죠." 합격했다. 세 번째 면접. 대기업 계열사. "프리랜서 기간이 공백 아닌가요?" 준비 안 한 질문이었다. "...공백이라고 생각 안 해요. 37개 프로젝트를 완수했고, 연평균 매출 5천만원 이상이었어요." "하지만 조직 경험은 없잖아요?" "4년 전까지 대기업에서 4년 일했어요. 프리랜서 후에도 팀 프로젝트 여러 번 했고요." "음..." 떨어졌다. 2주 동안 5곳 면접. 합격 2곳. 탈락 3곳. 생각보다 괜찮다. 선택의 시간 합격한 두 곳.스타트업: 연봉 4200만원, 스톡옵션 있음, 5인 디자인팀 에이전시: 연봉 4500만원, 인센티브 있음, 20인 디자인팀프리랜서 때 연평균 수입 약 4800만원. 돈은 조금 줄어든다. 하지만:4대보험 퇴직금 연차 15일 월급날 통장 입금 클라이언트 입금 독촉 안 해도 됨 세금 신고 회사가 함 아프면 병가 쓸 수 있음계산해보니 나쁘지 않다. 어디로 갈까. 친구한테 물었다. "스타트업이랑 에이전시 중 어디?" "넌 뭘 원하는데?" "...모르겠어." "프리랜서 그만두는 이유가 뭔데?" "지쳤어. 영업, 견적, 입금 독촉. 디자인만 하고 싶어." "그럼 스타트업. 에이전시는 클라이언트 응대 많아." 맞는 말이다. 스타트업을 선택했다. 출근 첫날 월요일 아침 9시. 3년 만의 출근. 알람 소리에 일어났다. 7시. 프리랜서 때는 9시에 일어났다. 옷을 입었다. 청바지에 셔츠. 프리랜서 때는 집에서 츄리닝이었다. 지하철을 탔다. 2호선. 만원. 프리랜서 때는 집이 사무실이었다. 회사에 도착했다. 9층. "한프리 디자이너님 오늘부터죠? 환영해요!" 팀장이 자리를 안내했다. 맥북 프로 16인치. 새 거. "업무 적응 천천히 하세요. 일주일은 온보딩 기간이에요." 천천히 해도 된다니. 프리랜서 때는 첫날부터 마감이었다. 점심시간. 팀원들이 같이 먹자고 했다. "프리랜서 하다 오셨다며요? 어땠어요?" "자유롭긴 한데... 불안정했어요." "왜 다시 들어오셨어요?" "팀으로 일하고 싶어서요." "적응 잘하실 거예요. 포트폴리오 봤는데 좋던데요." 밥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이게 맞는 선택일까. 퇴근 시간. 6시. "오늘 칼퇴하세요. 첫날인데." 밖으로 나왔다. 아직 해가 있다. 프리랜서 때는 밤 10시에 작업 끝냈다. 집에 왔다. 작업실 책상이 텅 비어 있다. 이제 여기서 일 안 한다. 이상했다. 한 달 후 한 달이 지났다. 적응했다. 생각보다 빨리. 출퇴근 리듬. 팀 미팅. 협업 툴. 보고 체계. 처음엔 답답했다. "이거 왜 보고해야 해?" "미팅이 왜 이렇게 많아?" "결재 라인이 왜 이렇게 길어?" 근데 익숙해졌다. 월급이 들어왔다. 25일. 통장에 350만원. (세후) 프리랜서 때보다 적다. 근데 마음이 편하다. 다음 달 일 걱정 안 해도 된다. 클라이언트 눈치 안 봐도 된다. 견적서 안 써도 된다. 세금 신고 안 해도 된다. 이게 이렇게 좋은 건 줄 몰랐다. 팀장이 물었다. "회사 생활 어때요?" "생각보다 괜찮아요." "적응 잘하시네요. 프리랜서 출신이라 걱정했는데." "프리랜서 때 배운 게 많아요. 혼자 다 해봐서." "그게 장점이에요. 다른 신입들보다 자립적이에요." 프리랜서 경력이 약점이 아니었다. 오히려 강점이었다. 프리랜서 친구를 만났다 주말. 프리랜서 친구를 만났다. "너 취직했다며? 어때?" "괜찮아. 월급 받으니까 좋아." "돈은 덜 벌잖아." "응. 근데 안정적이야." "나도 고민 중이야. 프리랜서 6년 차인데." "왜?" "지쳤어. 영업이랑 클라이언트 관리." "그럼 넌 취직 가능할 거야." "프리랜서 5년 넘으면 안 뽑아준대." "그거 거짓말이야." 친구가 놀랐다. "진짜?" "응. 나 4년 차에 붙었어. 포트폴리오만 괜찮으면 돼." "면접에서 뭐라고 했어?" "프리랜서 경력을 장점으로 포장했어. 공백이 아니라 경험이라고."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면 되는구나." "근데 정말 회사 오고 싶은지 먼저 생각해봐. 프리랜서가 좋으면 계속하는 게 나아." "난 지쳤어. 너처럼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어." "그럼 준비해. 포트폴리오 정리하고, 이력서 숫자로 채워." 친구가 웃었다. "고마워. 용기 났어." 헤어지면서 생각했다. 프리랜서 5년이 독이 아니다. 준비 안 된 5년이 독이다.프리랜서 5년은 장애물이 아니다. 오히려 무기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5년을 어떻게 포장하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뭘 배웠느냐다. 나는 지금 회사에서 프리랜서 시절 배운 자립심으로 일한다. 그게 내 강점이다.